2023년08월13일 8번
[과목 구분 없음]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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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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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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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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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정답률: 63%)
문제 해설
정답> ③
'백제 무왕이 건리한 사찰의 터에는 목탑 양식이 반영된 석탑이 남아 있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이 석탑의 복원 공사 중에 사리장엄구와 금제 사리봉영기*가 발견되었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가)'는 백제의 제30대 왕인 무왕(재위 600-641)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무왕 40년인 639년에 조성되었다. 그리고 2018년 6월에 복원되었다.
*사리 장엄구와 사리 봉영기: 사리 장엄구란 사리(舍利) 즉 '참된 불도 수행의 결과로 생긴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을 보호하거나 장엄(엄숙하게 꾸밈)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한 용기를 말하고, 사리 봉안기란 사리를 봉안하는 내력을 적은 글을 말한다. 사리 봉안기에는 사리 공양을 위한 석탑의 조성 과정이나 사찰의 창건 배경도 기록되어 있다.
오답 해설>
①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은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 원의 영향을 받았으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1348, 충렬왕 4)(국보 제86호). 목조 건축을 연상하게 하는 다채로운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으며, 서울 원각사지 십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다(1467, 세조 13).
② 통일 신라의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 석탑에는 이중 기단과 탑신 사이에 연화좌 위에 네 마리의 사자가 배치되어 있다(국보 제35호). 네 마리의 사자는 암수로 각각 두 마리씩 표현하였으며 모습도 제각각 다르다. 또 중앙에 인물상이 있으나 탑신 덮개돌의 아랫면에는 닿아 있지 않다.
④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은 삼국 시대 신라의 석탑이다(634, 선덕 여왕 3)(국보 제30호).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았으며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중에 가장 오래되었다. 기단 위 모퉁이에 화강암으로 조각한 사자상이 놓여 있다. 건립 초기에는 9층이었으나 현재는 3층만이 남아 있다.
'백제 무왕이 건리한 사찰의 터에는 목탑 양식이 반영된 석탑이 남아 있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이 석탑의 복원 공사 중에 사리장엄구와 금제 사리봉영기*가 발견되었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가)'는 백제의 제30대 왕인 무왕(재위 600-641)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무왕 40년인 639년에 조성되었다. 그리고 2018년 6월에 복원되었다.
*사리 장엄구와 사리 봉영기: 사리 장엄구란 사리(舍利) 즉 '참된 불도 수행의 결과로 생긴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을 보호하거나 장엄(엄숙하게 꾸밈)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한 용기를 말하고, 사리 봉안기란 사리를 봉안하는 내력을 적은 글을 말한다. 사리 봉안기에는 사리 공양을 위한 석탑의 조성 과정이나 사찰의 창건 배경도 기록되어 있다.
오답 해설>
①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은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 원의 영향을 받았으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1348, 충렬왕 4)(국보 제86호). 목조 건축을 연상하게 하는 다채로운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으며, 서울 원각사지 십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다(1467, 세조 13).
② 통일 신라의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 석탑에는 이중 기단과 탑신 사이에 연화좌 위에 네 마리의 사자가 배치되어 있다(국보 제35호). 네 마리의 사자는 암수로 각각 두 마리씩 표현하였으며 모습도 제각각 다르다. 또 중앙에 인물상이 있으나 탑신 덮개돌의 아랫면에는 닿아 있지 않다.
④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은 삼국 시대 신라의 석탑이다(634, 선덕 여왕 3)(국보 제30호).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았으며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중에 가장 오래되었다. 기단 위 모퉁이에 화강암으로 조각한 사자상이 놓여 있다. 건립 초기에는 9층이었으나 현재는 3층만이 남아 있다.